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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신 말씀/레인보우 코스

3. 어떻게 나의 믿음을 확신할 수 있는가?

by 하늘아래. 2007.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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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떻게 나의 믿음을


확신할 수 있는가?


(How can I be sure of my faith?)


라디오나 TV가 정상적으로 동작하려면 2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전기를 연결해야 하고, 두 번째는 잘 조정해야 한다. 전기가 들어가지 않으면 그 라디오나 텔레비전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어떠한 방법을 다 동원해도 결코 그 물건들은 동작을 하지 않는다. 모든 손잡이와 다이얼을 다 돌려보고 리모컨을 작동 해봐도 동작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안테나를 길게 뽑아보고, 두드리고 발길로 찬다고 할지라도 전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동작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2과에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고 했다. 우리가 치루어야 할 모든 값을 대신 지불하셨다고 했다. 우리가 그를 믿기만 하면 우리는 모든 죄에서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도, 우리가 엄청나게 자선 사업을 하더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전기를 연결하지 않는 라디오나 TV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관계를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내 생애 구주와 주님으로 모셨다는 것은 과거에는 그분과 전혀 상관 없이 내 뜻대로 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예수를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분으로 인식할 뿐 아니라 모든 삶 속에서 그분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사도 요한은 요1:12에서“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다. 여기서도 예수 믿는 것을 관계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해서 예수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출석하지만 자기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즉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는 말이다.

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갖고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구원의 기쁨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없이 결코 구원의 기쁨은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한다면 예수 믿는 맛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수 믿는 맛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구원의 확신이 있을 때에 우리에게 구원받은 기쁨이 생겨난다. 구원받은 기쁨이 있을 때에 주의 일을 하더라고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율법적인 신자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율법적인 신자는 누가 시켜야 하고, 벌이 두려워서 하는 신자들을 말한다.

 하나님은 우리가 확신하기를 원하신다.

신약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며 동시에 영원한 삶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요한일서 5:13에“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카메라 삼발이를 세 개의 다리가 지탱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 세분 모두의 역할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 성부께서 : 그의 말씀으로 주시는 약속들

(하나님의 말씀)

 성자께서 :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치르 신 희생 (예수님의 하신 일)

 성령께서 : 우리의 마음에 주시는 확신

(성령의 증거)

문제제기(Issue) :

믿음이 실제적이라는 어떤 증거가 있는가?

(What evidence is there that faith is real?)

 하나님의 말씀

(The Word of God)

기분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분이란 날씨나 대인관계나 기타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분은 변하기 쉽고 그래서 믿을 수가 없다. 성경에 있는 약속들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으며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위대한 약속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1. “내가(예수님) 들어 가겠다”

(I will come in) - (요한계시록 3:20)

특히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거나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에 도움이 되는 구절 중의 하나는 사도 요한이 라오디게아에 보낸 편지 속에서 주님의 말씀하신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기독교 신앙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 많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시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을 언급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기독교인이 되는 것

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

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 예수님을 우리 삶 속으로 초청하는 것

 예수님께 문을 여는 것 등이다.

예) 화가 홀만 헌트가 영감을 얻어 그린 ‘세상의 빛’이란 그림을 그렸다. 시대를 통해서 그려진 성화 중에서 가장 숭고한 작품 중의 하나라고 했던 이 그림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이 문 밖에 서 계시는데 그 문은 담쟁이 넝쿨과 잡초로 무성해져 있다. 문은 분명 어떤 사람의 인생의 문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수님을 그의 삶에 한 번도 초청한 적이 없다. 예수님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그는 들어가서 그 사람 인생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문 밖에서 들어가기 위한 문고리가 없다. 그 문고리는 문 안에만 달려있다. 달리 말하면 예수님이 우리 삶 속에 들어오시려면 우리가 문을 열어야 한다. 예수님은 억지로 문을 부수고 들어오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는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 그분께 문을 여느냐 열지 않느냐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만약에 문을 연다면 우리 주님은 그에게로 들어가셔서 더불어 먹고 마시는 새로운 관계를 맺으실 것이다.

2.“내가 너희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 으리라”

(I am with you always) - (마태복음 28:20)

우리가 예수님께 들어오시라고 청하기만 하면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28:20). 우리가 항상 그분과 함께 직접 대화하지 않더라도 그분은 항상 계신다. 당신이 친구와 함께 한 방에서 일하고 있다면, 직접 말을 걸지 않더라도 그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안다. 예수님이 계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분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

3.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겠다.”

(I give them eternal life)

(요한복음 10:28)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이 생 이후인 내세에서도 영원토록 살 수 있도록 영생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이“영원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면서 얻게 되는 삶의 질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주신 삶의 풍성함을 경험하는 그 순간 시작된다.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10:10)

그 삶은 현재의 삶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까지 지속된다.

<기독교적 역사관>

현재의 삶이 끝이 아니다. 세상의 지식은 이 세상을 떠나가면 사후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또한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순환적인 역사관을 주장한다. 즉 환생설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전생에는 돼지였는데 그가 착한 일을 하여서 후생에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 등이다. 이 사상에는 이생에서 잘못하여 나중에 환생하여 열심히 잘 살면 좋게 된다는 일종의 순환적 역사관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역사관이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관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천지 창조의 시작이 있고, 이 땅에 종말이 오는 마지막이 있다. 신약 성경의 여러 군데에서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세상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도 아니다. 영광스러운 종말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 요한계시록 21:11

 데살로니가전서 4:17

천국에는 고통이 없으며 눈물도 없다고 한다. 죄가 없으므로 더 이상 유혹도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이 없을 것이다. 그때는 예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이다. (고전13:12) 그리고 우리는 영광스럽고 고통이 없는 부활한 육신의 몸을 얻게 될 것이다(고전15장).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몸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요일3:2).

한 마디로 천국은 기쁨과 즐거움이 영원하게 지속되는 그야말로 복된 천국이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천국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너무 무료할 것일 것이라 말하며 비웃는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9)

✞ 신앙(Faith) =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담대히 믿는 것.
Faith = taking God's promises and daring to believe them.

 예수님이 행하신 일

(The work of Jesus)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내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의로워서,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순전히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이루신 일에 달려있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성취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위의 그분의 업적에 달려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이다.

1. 하나님은 그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것을 증거 하기 위해서 죽으셨다.

 그분은 영생의 선물을 주신다.

(요한복음 10:28)

 그분은 우리 대신에 그의 아들을 주어 죽게 하셨다. (요한복음 3:16)

2.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그 자신이 대신 담당 하셨다.

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길을 떠나 길을 잃었다 (이사야 53:6; 베드로전서 2:25)

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장벽이 되었다. (이사야 59:1, 2)

한편, 우리 예수님은 어떤 잘못도 없는 분이셨다. 그는 완벽한 삶을 사셨던 분이었다. 그와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사이에는 어떤 벽도 없었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우리의 죄악)을 예수님께로 옮겨버리셨다(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외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 그 순간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던 것이다. 그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 때문에 그렇게 되신 것이다.

이 일로 인해서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 하신 일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있던 벽이 무너졌다. 그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죄는 사라졌고 결코 유죄판결을 받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죄는 사라졌고, 결코 유죄판결을 받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정죄됨을 체험하지 않을 것이다(로마서 8:1)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일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 성령의 증거

(The witness of the spirit)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 사시게 된다. 누구나 그리스도인이 될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시기 위해서 오신다. (로마서 8:9)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신 갖도록 도와주시는 성령의 역할은 특별히 2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성령님은 우리의 속사람부터 변화시키신다.

(He transforms us from within)

 우리의 성격을 변화시키신다.

(Our characters) - (갈라디아서 5:22, 23)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의 할 것은 출생과 성숙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에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성장/성숙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장하게 됨에 따라 과거 예수 믿기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가게 될 것이다.

예) 닉키 검블이 정원에 배나무를 심었다. 자기 친구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솜으로 된 사과를 만들어 배나무에 매어달아 놓았다. 그것은 의미 있는 장난이었다. 니키는 속지 않았다. 열매가 맺는 데는 우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또한 배나무에서 사과나무가 열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 우리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Our relationships)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에 변화를 주신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변화에서는 과거 예수를 알기 전에는‘예수’라는 말을 들으면 거부감이 왔다.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주제가 예수 이야기가 나오면 꺼버리든가 다이얼을 돌려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로는 소리를 더 잘 들으려고 더 크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을 향한 내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변화는 과거에는 예수 믿는 자들을 만나는 것이 거북하고 불편했는데 지금은 기쁨이 된다. 또한 과거에는 거리를 가거나 신문을 보거나 불쌍한 사람들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어려운 사람이나 예수를 알지 못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눈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마9:35-36)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예수를 믿어도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구원의 기쁨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의외로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자들이 많다. 그래서“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라고 물으면 대개“그런 것 같습니다.”“그렇게 생각합니다.”“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등으로 대답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알기를 원하신다.“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2.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개인적이고, 깊은 확신을 준다. (로마서 8:15, 16)

(He brings a deep, personal conviction that I an God's child)

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아는 12 가지 방법을 말해주고 있다.

a. 우리 생활에 변화가 생긴다. (고후5:17)

b.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새로운 욕구가 생긴다. (요일2:3-5)

c. 세상 제도를 사랑하지 않는다.(요일2:15-17)

d. 죄에 대해서 새로운 감각이 생긴다.

(요일3:6-9)

e.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게 된다.

(요일3:14)

f. 성령의 증거. 성령은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요일3:24, 롬8:16)

g.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된다. (롬8:14)

h. 하나님 말씀에 대한 새로운 사랑 (벧전2:2)

i. 성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 (고전2:12)

j. 기도하려는 새로운 욕망 (롬8:15)

k.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새로운 사랑

(막5:18-20)

l. 주의 징계 (히12:5-8)

결론(Conclusion) :

 하나님은 우리가 용서받은 것과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사는 영생을 확신하기를 원하신다.

 이 확신은 그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것이지, 우리의 감정을 신뢰해서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확신의 근거는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 예수님의 업적, 성령의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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